1851년 창설 · 2026년 175주년
175년의 역사, 51년의 전승 — 보부상의 의리와 상도 정신을 이어가다.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는 조선 철종 2년인 1851년을 조직 형성의 기점으로 삼는 충청남도 내포지역의 전통 보부상 조직입니다.
예산(禮山)과 덕산(德山)의 첫 글자를 따서 예덕상무사라 하였으며, 예산·덕산·면천·당진의 사읍(四邑)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고덕과 삽교 등 주변 장시도 주요 활동 무대였습니다.
보부상은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이고 다니던 보상(褓商)과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던 부상(負商)을 아울러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행상인이 아니었습니다. 농촌과 장터를 연결하고 지역 간 물자의 유통을 담당하며 백성들의 생활경제를 지탱한 전문 상인들이었습니다.
예덕상무사의 역사는 곧 내포지역 장시의 역사이자 조선 후기 서민경제와 상업조직의 역사입니다.
예덕상무사의 역사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고문헌은 1851년에 작성된 《예산임방입의절목(禮山任房立儀節目)》입니다.
이 문헌에는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규칙과 질서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요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입의(立儀·立議): 조직 운영의 기본 약속과 규범
벌목(罰目): 규율을 어긴 사람에 대한 처벌 규정
신구접장교체규식(新舊接長交遞規式): 전임 접장과 신임 접장의 교체 절차
초상시부의전마련기(初喪時訃議錢磨鍊記): 회원의 상사에 관한 상부상조 규정
비방청부전기(俾房廳訃錢記): 부의금 관련 기록
한성부완문(漢城府完文): 관청의 공문과 관련된 기록
이 절목의 존재는 1851년 당시 예덕상무사가 이미 접장과 임원, 조직 규율, 상부상조 제도를 갖춘 공동체였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신구접장교체규식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접장 교체 의례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선생안(先生案)》은 예덕상무사의 역대 접장과 임원들의 이름을 기록한 귀중한 역사문헌입니다.
1851년 7월 김상렬(金相烈, 김상열로도 표기) 접장을 기점으로 하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후대의 선생안과 좌목을 통해 조직의 계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덕상무사는 접장을 중심으로 반수, 영위, 공원, 집사 등 여러 직책을 두어 조직을 운영하였습니다.
접장은 단순한 대표자가 아니라 상인들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공동체의 화합과 상부상조를 책임지는 지도자였습니다.
역대 접장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선대의 공덕을 기리는 전통은 예덕상무사가 오랜 세월 조직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완문(完文)은 관청에서 특정 사항을 인정하거나 관련 질서를 유지하도록 발급한 공문서의 일종입니다.
예덕상무사에 전하는 《한성부완문》과 《의정부완문》 등은 조선 후기 보부상 조직과 관청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보부상들은 내부적으로 엄격한 규율을 유지하는 한편, 관청과의 관계 속에서 상업활동의 질서와 조직의 권익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문헌은 보부상이 단순히 물건을 팔러 다니던 개인 상인이 아니라, 규범과 지도체계, 공동체 의식을 갖춘 조직적인 상인집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예덕상무사가 소중히 계승하는 정신 가운데 하나는 사대강령입니다.
물패행(勿悖行) — 패륜적이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라.
물음란(勿淫亂) —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
물망언(勿妄言) — 함부로 말하거나 거짓된 말을 하지 말라.
물도적(勿盜賊) — 남의 재물을 훔치지 말라.
보부상들은 이러한 도덕적 규율을 지키며 상인으로서의 신용과 공동체의 명예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신표(信標)는 보부상의 소속과 신분을 확인하는 표지로, 조직의 질서와 결속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사대강령과 신표는 장사를 하면서도 사람의 도리와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보부상의 상도 정신을 보여줍니다.
공문제는 예덕상무사의 역대 접장과 선대 보부상들의 공덕을 기리고, 조직의 결속과 전통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례입니다.
공문제에서는 영감제사와 사속제사 등 선조를 추모하는 제례를 봉행하고, 접장 교체 의례를 통하여 조직의 권한과 책임을 계승해 왔습니다.
이러한 의례는 선조를 기리는 제사인 동시에 공동체의 역사와 질서를 후대에 전달하는 전승 활동입니다.
특히 접장 교체 의례는 1851년 절목에 나타나는 신구접장교체규식과 역사적 연관성을 갖고 있어 그 문화적 의미가 큽니다.
근대 이후 교통수단과 유통구조가 변화하면서 전국의 전통 보부상 조직은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덕상무사는 선대의 문헌과 유품, 공문제와 조직의 기억을 지켜오면서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윤규상 두령을 비롯한 선배들의 노력으로 보부상들의 생활과 장터문화를 공연과 놀이 형태로 재현하는 활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길놀이, 장문놀이, 보부상들의 사설과 노래, 전통 복식과 장터의 풍속을 재현하는 보부상놀이는 예덕상무사의 중요한 전승문화가 되었습니다.
2026년은 예덕상무사가 보부상놀이 형태의 전승을 이어온 지 51년째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의 공연에는 역사적 생활풍속을 바탕으로 후대에 재구성한 요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문헌에 기록된 전통과 현대에 정립된 공연 형태를 함께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덕상무사의 역사적 가치는 오랜 연혁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해지는 고문헌과 유물에서 확인됩니다.
《예산임방절목》, 《선생안》, 《좌목》, 《완문》 등은 조선 후기 상업조직의 운영방식과 상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또한 신표와 인장, 전통 복식, 공문제 의례, 보부상놀이와 사설 등은 유형의 기록과 무형의 전승이 함께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덕상무사는 이러한 역사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기록하며 후계자를 양성함으로써 지역의 소중한 전통을 미래 세대에 물려주고자 합니다.
예덕상무사의 175년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대 접장과 반수, 영위, 수많은 임원과 단원들이 어려운 시대에도 조직을 지키고 기록을 남겼기에 오늘의 예덕상무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공연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선조들의 삶과 의리, 상도 정신, 공동체의 역사입니다.
기록이 이어져야 역사가 이어지고, 사람이 이어져야 전통이 이어집니다.
175년의 역사를 바르게 기록하고, 51년의 전승을 소중히 보존하여, 예덕상무사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겠습니다.
사단법인 예덕상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