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褓負商)은 봇짐을 지고 다니던 보상(褓商)과 등짐을 지고 다니던 부상(負商)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보상은 주로 비교적 가볍고 값나가는 물품을 보자기에 싸서 운반하였으며, 부상은 생활용품과 무거운 물건을 지게에 짊어지고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녔다.
보부상은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일 뿐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지역 간 물자의 유통과 정보 교류를 담당한 우리나라 전통 상업문화의 중요한 주체였다.
예덕상무사에서 시조로 받드는 백달원(白達元)은 보부상 공동체의 정신적 상징이다.
전승에 따르면 백달원은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장사를 가르치고, 서로 돕고 의지하는 상단을 조직하였다.
또한 조선 태조 이성계와의 인연을 통하여 보부상들이 상업 활동을 보호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러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로 모두 확정된 기록이라기보다 보부상 공동체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시조 전승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 정신은 사람을 돕고, 신의를 지키며,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는 데 있다.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는 충청남도 예산과 덕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보부상 조직의 전통을 이어 온 단체이다.
1851년에 작성된 『예산임방절목』 등 역사자료가 전해지고 있으며, 역대 접장의 계보와 공문, 인장, 인궤, 청사초롱, 선생안 등의 유물을 보존해 왔다.
이러한 자료들은 조선 후기의 상업제도와 장터문화, 보부상 조직의 운영방식 및 지역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예덕상무사는 시대의 변화로 전통적인 행상 활동이 사라진 뒤에도 공문제와 보부상놀이를 통해 공동체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오늘날 예덕상무사는 전통의례, 공연, 교육, 역사자료 정리 및 문화유산 보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예덕상무사의 역사적 유물과 무형의 전승문화를 함께 보존하여 후대가 직접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덕상무사의 역사는 단순한 상업의 역사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 도우며 살아온 서민들의 삶과 공동체 정신의 역사이다.
보부상들은 험한 길을 오가며 장사를 하였으므로 혼자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많았다.
이에 서로의 안전과 생업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공동의 규율을 지켰다.
예덕상무사에는 접장을 비롯하여 반수, 영위, 두령 등 전통적인 직책과 호칭이 전승되고 있다.
접장은 조직을 대표하고, 반수는 접장을 보좌하며, 영위와 두령은 전승된 조직 질서와 원로의 역할을 나타내는 직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각 직책의 구체적인 권한과 선출 절차는 시대별 관행 및 현행 정관에 따라 구분하여 이해해야 한다.
보부상 공동체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행동강령이 전승되어 왔다.
첫째, 물망언(勿妄言)
함부로 말하거나 거짓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둘째, 물패행(勿悖行)
무례한 행동과 행패를 삼가라는 뜻이다.
셋째, 물음란(勿淫亂)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말고 품행을 바르게 하라는 뜻이다.
넷째, 물도적(勿盜賊)
남의 재물을 훔치지 말라는 뜻이다.
사대강령은 상인들이 서로 신뢰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생활규범이었다.
보부상들은 병들거나 어려움을 겪는 동료를 돕고, 상을 당한 동료의 장례를 함께 치르는 등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 왔다.
보부상에게 동료는 단순한 장사 경쟁자가 아니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보부상 조직은 공동체의 규율을 어긴 사람을 다스리는 장문(杖門) 제도를 두었다.
오늘날 보부상놀이의 장문 장면은 과거의 엄격한 규율과 공동체 질서를 보여주는 역사적 재현이다.
실제 교육과 공연에서는 신체적 처벌을 하지 않고 안전한 연극적 동작으로 표현한다.
보부상의 사대강령과 상부상조 정신은 현대사회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정직한 거래, 서로에 대한 존중,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 공동체의 책임 의식은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공문제(公文祭)는 보부상 조직이 공문과 인장 등 상단의 상징물을 모시고 선대 상인의 공덕을 기리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 온 전통의례이다.
예덕상무사는 공문제와 접장 교체 의식, 보부상놀이를 통하여 역사와 전통을 이어 왔다.
공문제는 제례와 총회, 공동체의 축제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전통문화이다.
보부상놀이의 시작은 길놀이이다.
본소 깃발을 앞세우고 청사초롱, 접장, 공문궤와 인궤를 짊어진 사속, 풍장패, 지게꾼, 지소 깃발 등이 차례로 행진한다.
뒤이어 각설이와 걸뱅이가 등장하여 옛 장터의 모습을 재현한다.
계화자 소리는 보부상들이 함께 부르며 공동체의 흥과 결속을 다지는 전승노래이다.
대표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태조대왕 등극 후에
우리 생명 건져냈소.
계화 계화 계화자 좋소
계화 계화 계화자 좋소.
계화자 소리는 느린 가락과 빠른 가락으로 연행되어 왔으며, 선창과 후창을 통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특징이 있다.
죽방울놀이는 약장수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죽방울을 공중으로 던지고 받으며 재주를 부리던 놀이로 전승된다.
예덕상무사 전승자료에는 예산 오리동의 맹재명이라는 약장수가 고약을 팔기 위해 죽방울놀이로 사람을 모았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죽방울놀이는 장터의 판매 기술과 민속놀이가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죽방울을 직접 제작하고 그 조작 기술을 가르치는 일 역시 중요한 전승 활동이다.
제1마당 — 전승과 여흥
길놀이, 계화자 소리, 성수만세, 고사축원, 접장 선출과 의병 관련 상황극 등을 통하여 공동체의 의례와 역사적 기억을 표현한다.
제2마당 — 난전과 타령
약장수, 뱀장수, 소금장수, 옹기장수, 새우젓장수, 담배장수, 엿장수, 짚신장수, 떡장수 등이 등장하여 장터의 생활과 흥정을 재현한다.
제3마당 — 규율과 봉사
장문놀이와 길쌈놀이 등을 통하여 공동체의 규율과 협동, 상부상조 정신을 표현한다.
보부상놀이는 노래와 춤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이 아니다.
대사, 사설, 장단, 몸짓, 복식, 소품, 행렬 순서와 전통의례가 결합된 종합 민속연희이다.
따라서 전승교육에서는 원래의 가사와 곡조, 충청도 사투리와 장터의 말투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백성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활동과 구휼에 관심을 기울였다.
전승자료에는 직접 장사하여 얻은 재물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이지함의 삶은 상업활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정신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박승직(朴承稷)은 행상과 포목 거래를 바탕으로 사업을 일으킨 근대 상업인이다.
1880년대부터 옷감을 수집하여 판매하였으며, 1896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점을 열었다.
이 상점은 훗날 두산그룹의 역사적 출발점으로 이어졌다.
박승직의 사례는 전통 행상과 근대 상업의 연결을 보여준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동학을 창시한 사상가이다.
예덕상무사 자료에는 젊은 시절 행상 생활을 하며 전국의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살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가 제시한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의 사상은 당시 민중의 삶과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결된다.
다만 최제우의 구체적인 보부상 활동 기간은 추가적인 사료 검증이 필요하다.
이용익(李容翊)은 가난한 환경에서 행상 생활을 경험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이후 고종의 신임을 얻어 대한제국의 재정과 행정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에는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하여 근대 교육에도 기여하였다.
그의 삶은 어려운 출발점에서 국가 행정과 교육사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사례이다.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은 어린 시절 유기상점에서 일하고 유기 거래에 종사하였다.
이후 사업가로 성장하였으며 오산학교를 설립하고 신민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에서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다.
이승훈의 생애는 상업을 통해 축적한 경험과 자원을 교육과 민족운동에 활용한 사례이다.
박기순(朴基順)은 어린 시절 행상 생활을 시작한 인물로 소개된다.
이후 미곡 거래와 토지 경영을 통하여 사업을 확장하였으며 금융업에도 진출하였다.
전통적인 행상 경험이 근대적 사업 활동으로 이어진 사례로 살펴볼 수 있다.
임상옥(林尙沃)은 의주를 중심으로 대외무역에 종사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상인이다.
청나라와의 인삼 거래 등을 통하여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임상옥은 상업적 능력뿐 아니라 신용과 상도덕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다.
예덕상무사 자료에는 최창학, 최봉준, 신태화, 박흥식, 이덕유 등도 전통 상업과 관련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이들의 구체적인 행상 경력과 사업 활동은 개별 사료를 대조하여 추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직접 보부상 출신으로 분류하기보다는 옹기 행상과 포목 행상을 하던 가정에서 성장한 인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부친 김영석은 옹기장수로 생계를 이어갔으며, 모친 서중하는 어려운 환경에서 옹기와 포목 행상을 하며 자녀들을 길렀다.
이러한 가족사는 전통 행상이 서민들의 생활과 생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보부상과 관련된 인물들의 삶을 살펴보면 상업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활동에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상업은 교육과 구휼, 기업의 성장, 사회개혁과 독립운동 등 여러 분야와 연결되어 있었다.
다만 이 장의 인물들은 예덕상무사 소속 접장이나 단원이라는 뜻이 아니며, 한국의 전통 상업문화와 관련된 인물들로 소개한 것이다.
예덕상무사의 사당은 선대 접장과 보부상 공동체의 역사를 기리는 중요한 전승 공간이다.
보부상들은 어려운 행상 생활 속에서도 선대의 공덕을 잊지 않고, 제례와 공동체 의식을 통하여 조직의 정체성을 이어 왔다.
사당은 이러한 존경과 추모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예덕상무사 기록에 따르면 1970년대 윤규상 두령의 노력으로 예덕상무사 사우가 조성되었다.
이 사우는 선대 접장들의 위패를 모시고 보부상 공동체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는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윤규상 두령의 사우 조성 공적은 예덕상무사의 전통 보존사에서 중요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옛 사우는 이후 덕산면사무소 증축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선대 접장들을 기리는 위패와 제향의 전통은 이어졌다.
사우의 건물이 사라진 뒤에도 위패를 보존하고 제례를 계속한 것은 예덕상무사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예덕상무사 책의 2022년 기준 기록에는 맨 위 중앙에 백달원 시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그 밖에 역대 접장 123위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백달원 시조 위패는 제작된 지 1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위패들은 1976년 전시관과 사우를 건립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패는 단순한 목재 유물이 아니라 선대 접장의 계보와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역사자료이다.
2020년 내포보부상촌이 조성되면서 보부상 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마련되었다.
예덕상무사의 선대 접장 위패는 내포보부상촌 내 새로 조성된 사당에 모셔져 있다.
이 사당은 옛 사우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면서 공문제와 전통의례, 후손들의 역사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예덕상무사 사당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첫째, 백달원 시조와 역대 접장들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다.
둘째, 보부상 공동체의 계보와 전승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셋째, 공문제와 제향을 통하여 공동체의 의례문화를 교육하는 장소이다.
넷째, 후손들에게 선대 상인의 신의와 상부상조 정신을 전하는 교육의 현장이다.
사당의 변천사를 사진과 문헌으로 정리하고, 위패의 제작 시기와 명단을 정확히 기록하여 영구 보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옛 사우의 사진, 윤규상 두령의 조성 공적, 위패 이전 과정과 새로운 사당의 건립 경위를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덕상무사의 사당은 과거의 유산이자 미래 세대에 전할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소이다.
예덕상무사는 오랜 세월 선대 상인들로부터 이어져 온 보부상 문화와 전통의례를 보존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해 왔다.
전승교육은 단순히 노래와 춤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보부상의 역사와 조직, 전통의례, 장터문화, 공연예술, 전통음악과 민속학을 함께 이해하는 종합적인 교육이다.
예덕상무사는 여러 학자와 교수, 전통예술 전문가들의 지도를 받으며 단원들의 전승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전승자료에 기록된 주요 교육 지도자는 다음과 같다.
이걸재
전 석장리박물관장, 공주문화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향토문화·민속예술 전문가로 소개되어 있다.
이용도
충남영화인협회 회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화예술 분야의 지도자로 소개되어 있다.
정인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6호 관련 경력과 한국농악보존회협회 회장, 용인민속촌 풍물단장 등의 활동 경력이 기록되어 있다.
한기복
장구 명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전통 장단과 음악 분야의 전문가로 소개되어 있다.
박정욱
이은관 계통의 전통 소리와 배뱅이굿, 평산소놀음굿 관련 이수 경력이 기록되어 있는 전통예술 전문가이다.
이승원
극단 예촌 대표와 여러 연극·공연예술 단체의 활동 경력이 기록되어 있으며, 예덕상무사 보부상놀이에 대한 학술연구도 수행하였다.
※ 위 경력은 예덕상무사 책자에 기록된 당시 자료를 기준으로 한다.
예덕상무사의 전승교육은 다음과 같은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보부상의 역사와 조직체계, 공문제와 접장 교체 의례, 계화자 소리와 보부상타령, 죽방울놀이, 장수별 사설과 타령, 풍물과 장단, 장문놀이, 길쌈놀이, 전통 복식과 소품 사용법 등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하여 단원들이 전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제 공연과 의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예덕상무사는 역사와 문화유산의 가치를 밝히기 위하여 학술세미나와 포럼, 전문가 토론 및 관련 연구활동에 참여해 왔다.
학술연구에서는 공문제의 역사적 형성과 전승 방식, 보부상놀이의 공연 구성, 전통음악의 복원, 문화유산 지정과 후계자 양성 등이 주요 과제로 다루어졌다.
이러한 활동은 전승단체의 경험과 학계의 연구를 연결하고 예덕상무사의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였다.
예덕상무사는 역사자료와 전통의례, 공연 대사와 가사를 정리하여 후대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해 왔다.
특히 『보부상 예덕상무사의 문화재 가치성』과 전승 교본, 악보, 사설, 사진 및 영상자료 등은 예덕상무사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교육자료이다.
전통문화는 기록만으로 완전하게 보존될 수 없다.
직접 노래하고, 장단을 익히고, 의례를 배우며, 공연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로 전승된다.
예덕상무사는 앞으로도 학자와 전통예술 전문가들의 협력 속에 교육을 지속하고 젊은 세대의 참여를 확대하여 보부상 문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예덕상무사는 조선 후기부터 이어져 온 보부상 조직의 역사와 공동체 정신을 전승하고 있다.
공문과 인장, 인궤, 청사초롱, 선생안, 역대 접장 위패 등의 유형유산과 공문제, 계화자 소리, 보부상놀이 등의 무형유산은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
유형유산은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고, 무형유산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생활과 정신을 살아 있게 한다.
예덕상무사는 전통문화 보존을 위하여 법인 조직을 정비하고 전수관과 사무실, 공연 소품 보관 공간 등 전승활동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써 왔다.
이러한 공간은 단원 교육과 공연 준비, 전통자료 관리 및 후계자 양성을 위한 중요한 시설이다.
역대 접장 명부, 공문제 축문, 의례 기록, 전승 가사와 악보, 공연사진 및 영상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여야 한다.
특히 원본 자료의 작성 시기와 출처를 기록하고,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디지털 보존 작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보부상 문화의 미래는 이를 배우고 이어갈 후계자에게 달려 있다.
전승 교본에는 역사와 조직, 전통의례의 절차, 공연 대사와 가사, 장단, 복식과 소품 사용법 등을 상세히 수록하여야 한다.
기존 단원과 새로운 단원이 함께 교육받고 실제 공연에 참여하는 지속적인 전승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덕상무사의 역사적 가치와 전통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한 학술연구가 지속되어야 한다.
학계와 문화유산 전문가, 관계기관 및 전승단체가 협력하여 공문제와 보부상놀이의 원형을 연구하고 전승의 가치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 지정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전승의 지속성과 공동체의 생명력을 지키는 데 있다.
예덕상무사의 역사와 공연은 내포보부상촌, 덕산온천, 수덕사 등 지역의 문화관광 자원과 연계할 수 있다.
보부상 장터 체험, 전통음악 공연, 죽방울놀이 교육, 옛 물품 전시, 어린이 역사교실 등을 운영한다면 지역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관광을 위한 공연을 발전시키더라도 전통의례와 전승 원형은 구분하여 충실하게 보존하여야 한다.
예덕상무사의 역사는 이름 없이 장터를 오가며 생업을 이어 온 수많은 선대 상인들의 역사이다.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의를 지키고 서로 도우며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이 남긴 유물과 기록, 노래와 의례를 소중하게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책임이 있다.
예덕상무사는 선대의 뜻을 받들어 전통을 지키고, 학술연구와 교육을 통하여 그 가치를 밝히며, 미래 세대와 함께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전통은 보존할 때 역사가 되고, 전승할 때 미래가 된다.
사단법인 예덕상무사
죽방울놀이는 두 개의 막대 사이에 연결된 줄 위에 나무로 만든 죽방울을 올려놓고, 이를 회전시키거나 공중으로 던졌다가 받는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기예이다.
죽방울은 양쪽이 벌어지고 가운데가 좁아진 형태로, 줄을 빠르게 움직이면 회전하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숙련된 놀이꾼은 죽방울을 높이 던져 받거나 여러 가지 자세로 돌리면서 다양한 묘기를 펼친다.
죽방울놀이는 단순한 장난감 놀이가 아니라 음악과 춤, 재담과 곡예가 어우러진 전통 공연예술이다.
죽방울놀이는 조선시대 전문 연희집단인 솟대쟁이패와 관련이 깊다.
솟대쟁이패는 높은 장대와 줄을 이용한 곡예를 비롯하여 다양한 재주를 선보이던 유랑 예인집단이었다.
1701년 남장사 감로탱과 1736년 선암사 감로탱 등 조선시대 불화에는 전통 곡예와 연희의 모습이 남아 있다.
또한 19세기 말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에는 솟대쟁이패가 죽방울받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기예를 공연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이러한 기록은 죽방울놀이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전승되어 온 공연문화임을 보여준다.
예덕상무사 전승자료에 따르면 충남 예산군 오리동에 살던 약장수 맹재명은 덕산장에서 죽방울놀이를 선보였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맹재명은 인삼과 고약, 환약 등 여러 가지 약품을 판매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죽방울 재주를 펼쳤다고 전해진다.
그가 장터에 나타나 죽방울을 돌리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며, 죽방울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장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죽방울놀이가 약장수의 호객 행위이자 서민들의 즐거운 볼거리였음을 보여준다.
맹재명의 죽방울놀이는 덕산장의 생활문화와 민속예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역 전승자료이다.
죽방울놀이는 기예를 펼치는 동안 익살스러운 사설과 재담을 곁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맹재명의 죽방울 사설에는 죽방울이 떨어지지 않고 잘 돌아가는 모습,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모습, 줄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내용이 전해진다.
대표적인 사설의 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죽방울이요 죽방울
하늘에 솟으면 죽방울이요
땅에 떨어지면 땅방울이라”
이처럼 죽방울놀이는 관객의 웃음과 감탄을 이끌어내는 재담이 결합된 종합적인 민속연희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덕산장에서 이어지던 죽방울놀이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예덕상무사 기록에 따르면 1970년 무렵 윤규상 두령은 박재만, 김갑룡, 모순기, 신태호 등과 함께 덕산장에서 전해지던 장사 타령과 죽방울놀이를 조사하고 발굴하였다.
이들은 사라져 가는 보부상의 생활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연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80년대 초에는 민속학자 임동권 교수의 조언을 받아 덕산고등학교와 예덕상무사에서 죽방울놀이를 다시 재현하기 시작하였다.
윤규상 두령과 선대 전승자들의 이러한 노력은 죽방울놀이가 잊히지 않고 후대에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죽방울놀이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공연 기술뿐 아니라 전통적인 죽방울 제작 기술도 함께 보존되어야 한다.
예덕상무사의 기록에는 전대환 반수가 나무를 직접 깎아 전통 죽방울을 제작하고 그 맥을 이어 온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전통 죽방울은 형태와 무게, 중심의 균형이 중요하며, 줄 위에서 안정적으로 회전하도록 제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전대환 반수의 제작 활동은 전승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고 보존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죽방울의 제작 방법과 규격, 사용 재료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앞으로의 전승교육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예덕상무사는 죽방울놀이를 보부상놀이의 중요한 종목으로 이어 왔다.
전승자료에는 예술지도와 연출을 맡았던 이기승이 학교와 예덕상무사 단원들에게 죽방울 기술을 지도한 활동도 기록되어 있다.
죽방울놀이는 두 막대와 줄을 이용하여 회전시키는 기본 동작에서 시작하여, 공중 던지기와 받기, 다양한 자세의 묘기로 발전한다.
여기에 장터의 사설과 재담, 전통음악의 장단이 더해지면 하나의 완성된 공연이 된다.
이러한 교육은 단순한 재주 습득을 넘어 우리나라의 전통 장터문화와 서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죽방울놀이는 다음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첫째, 조선시대 유랑 예인들의 곡예와 민속연희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둘째, 약장수와 보부상들이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으던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민속학적 가치가 있다.
셋째, 전통 사설과 음악, 재담, 몸짓이 결합된 종합 공연예술로서의 가치가 있다.
넷째, 나무 죽방울의 제작 기술과 조작 방법을 함께 계승해야 하는 전통기술의 가치가 있다.
다섯째, 지역 주민의 기억과 선대 전승자들의 활동을 통하여 이어져 온 지역문화의 가치가 있다.
예덕상무사는 선대 전승자들이 남긴 죽방울놀이의 역사와 기술을 소중히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전달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죽방울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규격과 재료를 정리하며, 기본 동작부터 고급 기예까지 체계적인 교육자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맹재명의 사설과 덕산장 관련 구술자료를 수집하고, 윤규상 두령을 비롯한 선대 전승자들의 복원 공적을 정확하게 기록하여야 한다.
죽방울놀이는 장터에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던 작은 재주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소중한 전통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죽방울 하나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와 예술혼을 지키고, 그 소리와 재주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 예덕상무사인의 사명이다.
사단법인 예덕상무사
자료 정리·편집 : 반수 전대환